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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금융 1차 시장 본문

HOUSING FINANCE

주택금융 1차 시장

Java_Chip 2023. 1. 24. 22:34

[주택금융 1차 시장에 대해]

 

건국 후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는 그 기간도 길지 않았고 일제강점기의 잔재 청산, 정부 구성 및 좌. 우익 간의 대립 등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 때문에 동 기간에 특정한 주택 정책을 찾아보기 힘든 시기였다고 할 수 있으며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주택정책 및 주택자금의 공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한국전쟁 후부터 등장하였다.

한국전쟁 후 주택 재고량의 S 분의 1에 해당하는 59만 6천 호가 파괴되었고, 이에 따라 전후 주택정책의 핵심은 파괴된 주택을 새로 건설하는 것이었다. 특히 당장 집이 없는 국민들을 위해 구호 주택을 건설한 것이 특징이었다. 구호 주택의 건설에 집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주거 주택이 부족했던 이유는 정부의 사회 • 경제 재건 노력이 주로 산업기반 시설에 집중되었기 때문이었다(박천규 외, 2011).

이 때문에 주택 공급은 구체적 계획 없이 긴급 수요에 대응하는 위주로 이루어졌고, 주택 자금의 공급 또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긴급한 시기를 넘긴 후 국내외 정세가 안정됨에 따라 1960년대 후반에 주택 공사에 이어 한국주택 금고(한국주택은행의 전신)가 설립되면서 비로소 주택금융이 등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시기 한국주택 금고는 사실상 주택금융을 독점하는 은행이었기 때문에, 1970년대 이전 주택금융 1차 시장의 역사는 곧 한국 주택은행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1957년부터 1966년 말까지 10년간 주 택 자금 대출 누계 잔액은 고작 S4 억 원, 자금인지 원대 상 주택 수는 48,698호에 불과하였다(강이 나, 201). 이는 당시의 주택 보급실태와 주택에 대한 수요를 고려할 때 매우 작은 규모에 불과하였다.

정부는 1962년에 주택공사를 설립한 여 대지 조성 및 주택건설용 자재 조달, 주택 건설 및 개량에 대해 공공주택을 공급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당시 정부의 재정은 매우 열악하였기에 지속적인 재정 공급이 어려웠으며 민간에서 자체적인 주택자금의 조성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러한 필요에 기반하여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는 시기에 맞춰 한국주택 금고를 설립하였다. 즉, 1967년 2월 28일 「한국주택금고법」 법안이 통과되었고, 준비 기간을 거쳐 1967년 7월 10일 한국주택 금고가 발족하게 되었다.

 

주택 금고는 한국산업은행의 주택자금 융자 업무를 인수하고 민간 출자 자금을 합쳐 30억 5000만 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하였다. 

설립 목적 자체가 주택을 건설하는 데 공공자금만으로는 부족하니 민간의 자금을 조달해 민간 건설업체에 융자해 주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므로 초기 한국 주택은행의 활동은 자금의 운용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할 수 있을지, 즉 자금조달 부문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설립 초기 주택자금의 조달이 원활하지 못했고, 급기야 1968년 10월 말에는 융자를 중단하기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1969년 1월 4일에 「한국주택은행법」을 제정하였으며, 한국 주택은행으로 이름을 개칭하며 한국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하고, 외국에서 외화로 표시된 주택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자금조달 여건을 확충하였다. 

또한 제한된 범위의 일반대출을 취급할 수 있게 되었고 조직의 규모 역시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한국 주택은행은 우리나라 주택금융을 전담하는 은행으로서 더욱 강화된 조직과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은 한국 주택은행의 설립 당시 주택 금고에서 한국 주택은행으로 명칭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광고이다.

한국 주택은행의 자금조달에서 다른 금융기관들과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주택 청약에 금, 청약부금 등으로 대표되는 입주자 저축제도가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에게 분양 자격을 부여하는 이러한 저축제도를 통해 주택금융 재원을 조성함과 동시에 주택의 수요. 공급자를 연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설립 초기의 자금조달 면에서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으며, 예수금과 주택채권, 그리고 차입금의 규모가 두드러졌다. 

한국 주택은행은 시대별로 공영 • 민영 주택자금을 모두 담당하는 시기도 있었으나 그 설립 당시부터 민간 주택금융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었고, 실제로 이러한 노력은 초기부터 한국 주택은행 업무 활동에 반영되었다.

 

재정자금 및 국민주택채권 등 정부가 주도적으로 정책을 통해 자금을 모든 경우에는 운용 또한 공영주택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민간의 예수금 및 주택채권은 주택부금 가입자 및 민간 건설사 등 민간 부문의 주택자금 대출로 운용되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초기 주택자금의 수요에 비해 주택자금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국 주택은행은 민간자금 조달 을 끌어내기 위해 큰 노력을 하였다. 

정부 또한 주택 건설계획을 맞추기 위하여 제도의 변경 등을 통해 원활한 민간 부문의 자금조달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배경 탓에 주택금융을 독점적으로 수행하던 한국 주택은행의 자금 조달 및 운용은 당연히 주택 제도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제도의 변화에 따라 자금조달의 비중 및 규모 또한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출처 : 한국의 주택금융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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